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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오피니언 사설

“스쿨존은 있어도 안전은 없다”

오마이경주 기자 입력 2025.07.25 09:34 수정 2025.07.25 09:35

“스쿨존은 있어도 안전은 없다”


“학교 앞에 차도와 인도 구분조차 없어요. 펜스도, 차단봉도, 횡단보도도 없어요. 도로 위를 아이들이 그냥 걷습니다. 이게 어린이 보호구역이 맞나요?”

외동읍 석계초등학교 앞 통학로에서 만난 한 학부모의 외침은 단순한 민원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그 말처럼 현장을 찾았을 때, 기자는 놀라운 장면을 마주해야 했다. 학교 정문 앞은 ‘보행자’라는 존재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좁고 울퉁불퉁한 도로 위를 오가는 차량들 사이로 몸을 바짝 붙이며 걷고 있었고, 학원차량과 일반 차량이 뒤엉켜 혼잡을 이루는 사이, 아이들은 마치 장애물을 피해 걷는 듯한 모습으로 등하굣길을 오가고 있었다.

석계초등학교가 위치한 해당 구간은 명백한 어린이 보호구역, 이른바 ‘스쿨존’이다. 그러나 이곳에는 일반적인 스쿨존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보행자도로는 학교 방향 일부 구간에만 간헐적으로 설치돼 있고, 정작 학교 정문 앞은 차량이 인도 없이 학교 담장에 바로 붙는 구조다. 안전펜스는 물론이고, 속도제한 안내판이나 주의 표지판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어린이 보호구역임을 알리는 붉은색 노면 도색조차 일부 구간에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더 큰 문제는 도로 자체의 상태다. 오랜 시간 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듯한 도로는 패이고 꺼진 부분이 많고, 비가 오는 날이면 그곳엔 큰 웅덩이가 생긴다. 아이들은 이 웅덩이를 피하려다 차도 깊숙이 들어서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자주 놓인다. 실제로 한 학부모는 “아이가 웅덩이를 피해 뛰다가 차에 부딪힐 뻔한 걸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며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의 불안은 이미 수차례 경주시와 경북교육청에 민원으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은 늘 “예산 부족”, “도로 구조상 개선 어려움”이라는 말뿐이다.

실제로 교육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석계초 주변은 산업단지가 밀집한 지역으로 차량 통행이 많고, 구조적 제약이 있어 즉각적인 개선은 어렵다”고 밝혔다. 대신 “단기적으로는 안전요원 배치와 노면 도색 정비, 임시 차단봉 설치 등 실현 가능한 방안부터 순차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장의 학부모들은 이마저도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다. “지금까지도 그런 말만 수없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대책을 논의해도, 현장에서 체감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대책’이 아니다. 특히 어린이의 안전은 어떤 행정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다. 재난은 예고하지 않고,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석계초 스쿨존 문제는 결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주시 전체 스쿨존에 대한 근본적 점검과 실질적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특히 지역 내 공장과 산업단지 인근의 학교들은 교통량이 많고, 구조적으로 위험 요소가 높은 만큼 보다 세심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표지판 몇 개 설치하고 도색만 칠해놓은 수준으로는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할 수 없다.

진정한 보호는 시설의 물리적 안전, 통행 통제, 감시 체계, 그리고 제도적 감시까지 병행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매일 같은 길을 걷는 아이들의 통학로라면, 우리는 한순간의 방심조차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경주시와 교육당국은 지금이라도 석계초 스쿨존 문제를 단순 민원으로 치부하지 말고, 어린이 생명과 직결된 중대한 안전 사안으로 인식해야 한다. 우선순위에 대한 판단이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길, 그것은 단지 보도를 깔고 펜스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아이를 바라보는 도시의 철학과 의지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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