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지역의 고령화는 이제 단순한 통계 수치를 넘어 생존의 문제로 다가와 있다. 시내 외곽의 한 가구당 평균 연령이 70대를 훌쩍 넘긴 지 오래다. 현장에서 만난 실버 고객들의 공통된 하소연은 "죽고 나면 나오는 돈이 다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신세 한탄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보장성 보험 체계가 가진 근본적인 모순을 꿰뚫는 일침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가입자가 사망할 경우 유족에게 유족연금을 지급하며, 유족이 없을 경우 배우자, 자녀, 부모 순으로 '사망일시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문제는 1인 가구의 급증과 가족 해체로 인해 이 '사후 자금'이 정작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하고 국가 기금으로 귀속되거나, 고인이 된 후 장례비 정도로 소비된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주인을 찾지 못해 기금에 환수되는 사망일시금 규모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산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관점을 도입해야 한다. 보수적 가치관에서 볼 때, 개인이 평생 성실히 납부한 보험료와 연금은 국가의 자산이기 이전에 개인의 사유재산적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가입자가 노후 빈곤으로 인해 인간적인 존엄성을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사후에 지급될 자금을 생전에 유동화하여 지원하는 것이 정책적 정의에 부합한다.
하나의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경주 성건동에 거주하는 70대 중반의 A씨는 과거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20년 이상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했다. 현재 그는 지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고 월세조차 내기 힘든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A씨가 사망하면 사촌 이내의 친척이 사망일시금을 받거나, 연고자가 없어 기금에 귀속될 처지다. 만약 A씨가 사후에 나올 500만 원~1,000만 원 상당의 사망 자금을 생전에 의료비나 간병비로 당겨 쓸 수 있다면 어떨까. 그에게는 그 돈이 '생명의 줄기'가 될 것이다.
물론 제도적 보완책은 정교해야 한다. 무분별한 조기 인출은 기금 고갈을 앞당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국민노후지원금'이라는 이름 아래, 사망 시 확정적으로 지급되는 금액의 일정 비율(예: 50~70%)을 생전 의료비, 간병비, 혹은 최소 생계비 목적으로 한정하여 지급한다면 기금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 이는 복지 예산을 무작정 늘리는 포퓰리즘과는 다르다. 이미 확보된 재원을 가장 필요한 시기에 배분하는 '지출의 최적화'다.
또한, 이러한 제도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고독사' 예방에도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경제적 빈곤은 사회적 단절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쓸쓸한 죽음으로 귀착된다. 생전에 자신의 자산을 통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면 어르신들의 사회적 활동과 자존감 회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국가는 죽은 자보다 산 자의 삶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명제 앞에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국민연금법과 관련 보험 약관을 개정하여, 수급자가 75세 혹은 80세 이상의 고령이면서 일정 소득 수준 이하일 경우 사후 자금을 생전 지원금으로 전환 신청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천년고도 경주의 역사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이어져 왔다. 평생을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우리 세대의 어르신들이, 정작 본인이 쌓아둔 자산을 써보지도 못한 채 빈곤의 늪에서 생을 마감하게 해서는 안 된다. 죽어서 받는 수백만 원보다, 살아서 겪는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만 원 한 장이 국가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행정이다.
이제 '사후 보험금'의 역설을 끝내고, 실질적인 노후 지원을 위한 제도적 대수술에 나설 때다. 그것이 국가를 믿고 평생을 바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이자, 진정한 의미의 보수적 가치 실현이다. 본 기자는 경주 시민들과 함께 이 논의가 탁상행정에 그치지 않고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길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