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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거리 점령한 선거 현수막, 정치권 스스로 걷어내야

오마이경주 기자 입력 2026.05.27 11:04 수정 2026.05.27 11:06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의 거리가 또다시 선거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있다. 주요 교차로와 상가 앞, 어린이보호구역과 통학로까지 정당과 후보자의 이름, 정치구호, 상대 진영을 겨냥한 비방 문구가 무질서하게 내걸리고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축제라지만, 지금 거리의 풍경은 축제라기보다 공해에 가깝다. 시민들은 원치 않아도 매일같이 자극적인 문구를 마주해야 하고, 보행 안전과 도시 미관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현수막이 불편을 넘어 안전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낮게 설치된 현수막 고정줄에 어린이가 걸려 넘어지고, 강풍에 현수막 구조물이 휘거나 신호등이 쓰러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교통신호를 가리거나 보행자의 시야를 막는 현수막은 언제든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선거운동이라는 명분이 시민 안전보다 앞설 수는 없다. 후보자와 정당을 알리기 위한 수단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다면 이미 그 정당성은 사라진 것이다.

현수막 난립의 배경에는 2022년 옥외광고물법 개정 이후 정당 현수막 규제가 대폭 완화된 현실이 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취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유가 허위사실, 혐오 표현, 원색적 비방까지 무제한으로 허용하는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거리의 현수막은 정책 경쟁보다 상대를 깎아내리는데 치중하고 있다. 유권자가 알고 싶은 것은 지역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비전이지, 상대 진영을 향한 막말과 선동이 아니다.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불법 현수막 정비에 나서고 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다. 단속 근거가 약하고 처벌도 과태료 수준에 머물다 보니, 정당과 후보자들은 일단 걸고 보자는 식의 행태를 반복한다.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거대 정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엄정하게 단속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돌아간다. 시민의 보행권, 안전권,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가 정치권의 편의 앞에서 밀려나고 있는 셈이다.

환경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 대부분의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수지 재질로 만들어져 자연분해가 어렵고, 선거가 끝난 뒤 대량 폐기된다. 소각 과정에서 온실가스와 유해물질이 발생한다. 인공지능과 디지털 행정을 말하는 시대에 여전히 거리를 천조각으로 도배하는 선거운동 방식이 과연 적절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SNS, 온라인 토론, 정책 플랫폼 등 유권자와 만날 수 있는 통로는 이미 다양하다. 낡은 방식의 물량 공세가 민주주의의 품격을 높일 수는 없다.

정치권은 더이상 시민의 인내를 시험해서는 안된다. 여야 정당과 지방선거 후보들은 불법·혐오·비방 현수막을 즉시 자진 철거해야 한다. 국회도 정당 현수막을 일반 현수막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시민 안전과 공공질서를 침해하는 면허장이 될 수는 없다. 거리의 현수막 숫자가 아니라 정책의 깊이로 경쟁하는 선거, 그것이 유권자가 바라는 최소한의 정치다.

김장하 (전 경상북도 명예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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