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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경주는 APEC 정상회의 성공적 개최 이후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글로벌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 뒤편, 경주의 첫 관문인 고속버스터미널 일대에서 벌어지는 낯뜨거운 불법 주정차 실태는 APEC 개최 도시라는 타이틀을 무색하게 만든다.
고속터미널에서 황리단길 입구로 이어지는 교통 요충지라 소통량이 많다. 특히 이곳은 시내버스의 주요 노선이 겹치고 수많은 환승객이 몰리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얌체 주차 차량들로 인해 극심한 교통 체증이 상습적으로 빚어지고 상가 안쪽에 거주하는 일반 주민들은 차량 진출입조차 가로막혀 일상적인 생활권마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러한 무법천지를 수수방관해 온 경주시 교통행정의 부끄러운 현주소 일 것이다. 이곳은 수십 년간 해당 구간의 주정차 단속이 사실상 전무했던 배경에는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납득하기 힘든 외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 단속하지말라는 민원에 단속을 하자 못했다는 어이없는 행정 더욱이 특정인이 단속을 막고 있다는 외부의 지적에 대해서도 사실상 이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 이는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할 공권력이 일부 상인이나 특정인의 이기적인 항의에 휘둘려 스스로 제 기능을 상실했음을 자인한 꼴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경주시 공직사회에 준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공무원이 마땅히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는 흔들림 없는 '공공성'과 '공익'이다. 공식적인 심의기구의 결정이나 합법적인 절차도 없이, 단지 '단속 반대 민원'이 껄끄럽다는 이유로 행정을 유보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 유기이다. 목소리 큰 소수의 항의가 두렵다고 해서 다수의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안전과 편리가 훼손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공직자는 언제나 법과 원칙이라는 반석 위에 서서 다수의 이익을 수호하는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눈치를 살피며 복지부동하는 사이, 그 무너진 질서로 인한 불편과 피해는 고스란히 선량한 경주시민과 우리 지역을 찾은 귀한 손님들에게 돌아갔음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비단 공직사회만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기적인 시민의식에 대해서도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 나 하나의 편의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도로를 점거하고 불법 주차를 자행하는 행위는 결국 타인에게 나의 불편과 고통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동이다. 특히 그것이 생업을 이어가는 이웃 상인들과 거주민의 통행을 막고 지역 사회의 혈관인 교통을 마비시킨다면, 이는 단순한 기초질서 위반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존립을 흔드는 폭력과도 같다.
APEC 개최 도시라는 영예와 자부심은 번듯한 국제 회의장이나 새롭게 닦인 도로망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 도시를 채우고 살아가는 시민들의 성숙한 배려와 준법정신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일류 도시의 품격이 완성된다. 내 집 앞, 내 가게 앞의 작은 이익만을 고집하며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는 낡은 관행과는 이제 과감히 버려야 한다.
뒤늦게 시는 어제부터 해당 구간에 대한 본격적인 주정차 단속에 돌입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조치이다. 하지만 이번 '뒷북 단속'으로 그간의 직무 유기와 외압 의혹이 유야무야 덮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시는 누구에 의해 법과 절차가 고무줄처럼 변질되었는지 그 명확한 실체를 규명하고, 다시는 특정인의 입김에 원칙이 꺾이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뼈를 깎는 쇄신을 보여줘야 한다.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공공성을 실현하는 투명한 행정, 그리고 이웃을 배려하고 타인의 불편을 헤아릴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 이 두 개의 수레바퀴가 굳건히 맞물려 돌아갈 때, 비로소 우리 경주는 겉모습만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시민이 행복하고 세계인이 존경하는 진정한 명품 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멈춰 섰던 경주시의 교통행정이 이번 사태를 뼈아픈 교훈 삼아 다시 올바른 궤도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